1) 삼귀의 - 올바른 믿음의 출발
일상적인 삶을 살다 불교에 입문하려고 첫 마음을 냈다면, 그 순간부터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사는 참다운
불자가 되어야 한다. 참다운 불자가 되려면 먼저 지극한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해야 한다.
삼보란 세 가지 보배라는 말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를 말한다.
이 삼보에 신명을 바쳐 미든것을 삼귀의라고 한다. 귀의란 돌아가 의지한다는 말로, 지금까지의 잘못된
믿음과 생각을 버리고 참다운 진리의 세계에 안주하여 살아간다는 뜻이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진리를 깨쳐 우리에게 보여주신 따사롭고 인격적인 부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진리를 온몸으로 구현한 온화하고 대자대비한 부처님을 품에 안기는 것이다.
진리를 온몸으로 구현한 온화하고 대자대비한 부처님을 내가 안주할 수 있는 섬으로 여기고 귀의하여
흔들림 없는 마음의 확신과 인정을 얻는 것이다. 그 다음 진리 그 자체인 법에 귀의하는 것이 법귀의이다.
스님들께 귀의하는 것은 부처님과 법에 따라 수행하고 가르치는 스님들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즉, 좋은 벗과 복밭인 거룩한 스승에게 귀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삼귀의는 부처님 당시부터 수계식 등 여러 의식에서 실행되었고, 지금도 모든 불교 의식 때 빠짐없이
행하는 의례가 되었다. 초기 불교에서는 다음과 정형구나 삼귀의 삼창을 통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2) 자신을 낮춤
불교의 수행은 자신을 낮추는 공부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이것을 하심이라 한다 어느 누가 나를 멸시하더라도 털끝만큼도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겸손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켜켜이 쌓여 있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업, 그 더러운 때를 닦아내고 맑은 성품을
찾아내어 깨달음을 이루는 데는, 첫째도 둘째도 나를 낮추고 남을 공경하는 마음 공부가 제일이다.
그런데 절에 다닌 지 오래된 사람인데도 "나는 무엇을 했네, 나는 무엇을 보았네" 하며 처음 발심했을 때의
겸손함을 잃고 아상만 높은 경우가 있다.
최고라고 우쭐대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일이며, 특히 이런 태도는 수행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점점
부처님의 법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불자는 자신을 낮추어야 함은 물론,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교만심을 버려야 한다.
부처님 당시, 스님들이 탁발을 한 것도 다른 이에게 복을 짓게 하고, 자기 자신을 낮추어 해탈을 향해
정진하기 위해서였다. 진정 자신을 낮춤때라야 남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의 마음을 부처님의 법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다.
3) 계를 지키고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며
누구나 어두운 곳보다 밝고 환한 곳에 머물고 싶을 것이다. 빛은 생명을 품고, 어둠은 죽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 대승신기론 *
처음 공부하는 보살이 비록 신심이 두터우나 전생부터의 무거운 죄와 나쁜 입장이 많으므로
때로 삿된 마왕에게 홀리기도 하고, 세상일에 끄달리기도 하며, 갖가지 병고에 시달리는 등
재난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불자들이 자칫 착한 법을 닦는 일을 멈추게 되나니,
반드시 밤낮으로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으로 참회하며 권청하고 수희하며 보리에 회향하기를
늘 쉬지 아니하면, 나쁜 업장이 차츰 소멸하고 선근이 늘어나리라.
참회란, 지나간 허물을 뉘우치고, 아주 끊어서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허물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허물이 있으면 뉘우치는 것이다. 즉 허물이 있다면 바로 참회하고,
나쁜 짓을 저질렀다면 부끄러워하며 곧바로 고쳐서 스스로 새롭게 해야 한다. 그러면 죄업은 날로
줄어들고 마침내 반드시 도를 얻을 것이다.
참회는 자기 반성에서 출발하여 정진의 강한 동기가 된다.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 삶을 돌이켜보고,
올바르게 깨달음을 향해 가고 있는지, 또는 처음 귀의하였을 때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만약 허물을 발견하면 스스로 부처님 앞에 고백하고, 3배, 108배, 1080배, 3000배 등으로
참회해야 한다.
4) 끊임없이 정진하라.
처음 먹은 마음을 초발심이라고 한다
"처음 마음을 발할 때 곧 정각을 이룬다"고 풀이하는데, 이는 '처음 먹은 마음이 변치 않고 그대로
있으면 곧 부처님의 경지'라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원을 세우지만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변하기 쉽다.
깨달음을 얻겠다는 결심,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의지가 바로 정진이다.
변함없이 정진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길이다.
** 유행경 **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
방일하지 말라.
나는 방일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정각을 이루었다.
한량 없는 온갖 착함도 또한 방일하지 않음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5)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는 반가운 이, 그리운 이르 만나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로 그 뜻을 표시한다.
불자들은 스님이나 법우를 만나면 합장으로 예를 표한다.
열 손가락을 가지런하게 모으고, 양 손바닥을 맞대어 마음을 집중한다.
이렇게 다소곳이 고개 숙여 합장하는 마음이 바로 믿음의 출발이다.
합장은 자기 마음의 표현이며, 더 나아가 너와 나의 마음이 하나의 진리위에서 서로 만났음을 뜻한다.
동시에 존경과 진실과 자비의 마음을 뜻한다.
절을 하고 합장하는 마음에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담겨있다.
또한 매일 108배를 하면, 교만심을 버리고 하심하게 되어 매사에 성내지 않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공양 전후에 항상 합장하며 "이 음식에 깃든 모든이의 공덕을 생각하며 감사히 먹겠습니다" 라고
읋조릴 때 자신을 있게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니, 다른 이에게 해로운 일을
감히 할 수 없을 것이다.
불공을 할 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아야 한다. 불공은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고,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며, 열반의 길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의 표시다.
또한 모든 중생에게 회향한다는 뜻도 담고 있기에 중생의 은혜를 갚는 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웃에
게 따듯한 마음을 베푸는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기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실천이 이 세상을 더욱 맑고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머리를 숙여 합장하고, 공양을 하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불공이나 발원을 하면서도 자신보다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생각하고, 주위 사람을 부처님 공경하듯
이 받드는 자세가 몸에 배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불자들이 이런 자세를 취할 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화합의 정신이 실현되는 것이다. 겨자씨 만한 불씨 하나로 수미산처럼 쌓여 있는 마른 풀을 다 태울 수 있듯이,
우리들의 조그마한 신행의 불이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태우고 불국정토를 이 땅에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 법구경 **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실행하지 못하는 게으로사람은
남의 소를 세는 목동과 같아
수행의 보람을 얻기 어렵네.
4. 진리의 세계
1) 법 --- 열반으로 인도 하는 진리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나이다. 이 법은 현실에서 밝혀진 것이며,
머지않아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열반으로 잘 인도하는 것이며, 또 지혜있는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잡아함경--
불교에서는 지리를 깨달으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진리의 내용은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에
이미 설해져 있다.
이 진리의 말씀을 바로 법보라고 한다. 법은 곧 진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법을 깨닫는다" '법을 본다'는 것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체험이다.
이것은 깨달음, 즉 열반과 성불을 뜻하기 때문이다.
법의 원어인 다르마는 산스크리트로, 기원을 찾자면 인도 고전인 베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베다 시대에 법은 "자연계의 법칙" "인간계의 질서"를 잘 나타내는 용어였고, 팔리어 주석에 따르면
인, 덕, 가르침, 사물의 네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다르마가 불교에서 "법의 내용을 이루는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말이
되어 '깨달음을 얻는 진리' 또는 '진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친 교법' 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자주 쓰는 '법' 이라는 말은 바로 진리와 교법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법의 의미가 존재, 사물이라는 의미로 확대되고, 결국 존재하는 모든것을 의미하는
제법, 연기 에 의해 성립한 존재를 말하는 의미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때 법의 의미는 모든 현상과
그 현상을 성립시키고 있는 근본적 존재를 말한다. 이런 법의 개념은 불교만의 독자적인 것이다.
이러한 법의 의미에 대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와 그것을 제자에게 가르치신 교법을 일컫는다.
삼보 중 법보를 비롯하여 일상적으로 법이라고 말할 때 이에 해당된다.
둘째, 존재하는 모든 것, 즉 모든 사물을 일컫는다. 제법무아의 법, 연기에 의해 성립된 존재인
세상의 모든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금강경과 같은 대승 경전에서 '모든 법의 공하 모양'이라고
말할 때가 이에 해당된다
셋째, 불교 경전을 일컫는다.
이와 같이 법의 개념은 다양하며, 경전과 논서에 쓰일 때는 진리와 교법이라는 의미 외에 존재라는 뜻으로
쓰일 때가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2. 연기 --- 공존의 세계관
---잡아함경---
비구들이여, 내가 아직 정각을 이루지 못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이 세상은 모두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서
그 고통에서 헤어나는 길은 모르고 있다. 언제 이 고통에서 헤어나는 도리를 알 수 있을 것인가?라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 때 다시 무슨 연유가 있어서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바른 사유와 지혜로써 해답을 얻었다. '태어나기 때문에 늙고 죽음에 이른다. 태어남으로 말리
암아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구도자 고타마가 진리, 즉 법을 깨달아 마침내 부처가 되었다.
6년간의 모진 고행을 버리고 선정에 든 지 7일째 되는 날 새벽별을 보고 깨달은 진리,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연기법이다. 태어남이 있으므로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생성과 소멸의 관계성
을 깨달은 것이다. 연기란, 모든 것은 원인이 있으며 원인을 근거로 생겨나고, 원인이 사라지면 소멸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써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저것이 사라진다 ---잡아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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