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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2. 불교란 무엇인가

by 심신건강 2025.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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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리에 대한 깨달음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행하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교주는 부처님이다.

그러나 부처님 스스로 한번도 당신이 세상의 절대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다만 세상의 진리를

먼저 깨달았다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불교'의 '불'이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 '붓다'의 음사로 ,

'깨달은 사람' 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깨달음인가? 

바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다.

불교에서는 누구라도 진리를 깨치면 부처가 될수 있다. 진리를 깨치면 신조차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

절 입구에 서 있는 사천왕들은 본디 하늘에 사는 신이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감격한 나머지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토록 부처님 법을 보호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스스로 발심하여

부처님 도량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불교의 진리는 하늘의 신을 감동시킬 뿐만 아니라, 그 경지조차

뛰어넘는 가장 수승한 가르침이다.   삶을 당당하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의 결과도 자못 다르다.

불교의 진리는 우리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지혜를 준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완성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그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자신의 목표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고, '난 안돼' 하면서 소극적이고 부정적으로

사는 사람은 그만큼 더 목표와 멀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 있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바른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진리를 깨닫고 행하면서 사는 삶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겠는가.

불교는 바로 이 길을 제시하고 있다.

 

2) 삶을 직시하여 그 해답을 제시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궁금해하며 해답을 찾아 헤매다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도 있다.

한평생을 살면서 목숨 걸고 그 해답을 찾는 것은 진정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의 삶이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말은 쉽지만 태어나는 일만 생각해 봐도

얼마나 고생스럽고 힘든 일인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받는 작은 상처 하나에도 사느니, 못 사느니 힘겨워한다.

그리고 큰 병에 시달리거나 평생을 서로 의지하던 사람의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 고통과 아픔은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다.  그렇듯 돌아보면 삶의 많은 시간이 즐거움보다 괴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환희의 시간보다 슬픔과 후회의 시간이 더 길고 많다.  그래서 삶을 고해,  고통의 바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왜 사는지, 왜 이 길을 가야 하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끝도 모를 삶을 그저 안개 낀 다리를

건너는 사람처럼 어림짐작으로 살고 있다.  이렇듯 길을 모르면서 그저 어둠 속을 헤매듯 살아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은 모르면서 사는 것" 이라 했다.

모르고 사는 삶을 알고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주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이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지 모르는 사람은 가책 없이 그 행위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고, 그것이 나와  남에게 아픔을 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교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해답을 주고 있다.  

 

3)주인공은 나 자신

 

때때로 만원버스나 지하철에서 "웬 사람이 이렇게 많은거야"라고 짜증을 내는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은 자신도 

그곳을 복잡하게 만드는 장본인임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일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다.

어떤 일에서는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그 일의 주인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 지옥에 있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산다.  먹을 것이 있어도 자기만 먹으려고 한다.  하지만 지옥의 숟가락은 

너무 길어 자기 수저로 제 입에 밥을 넣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상대를 원망하면서

굶주리고 산다.  눈앞에 먹을 것을 두고도 말이다.

그러나 극락에 있는 사람들은 이웃을 먼저 생가하며 산다. 그래서 먹을 때는 서로서로 먹여주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은 지옥 사람들과 달리 모두 맛있게 먹으며 행복하게 산다.

 

이는 지옥과 천상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지만, 오늘난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교훈이다.

자신만을 위해 탐욕스럽게 사는 사람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람의 삶은 대조적이다.  이처럼 자기중심적

삶을 이웃과 함께하는 삶으로 바꿀 때,  괴로움의 세계가 자유와 평안의 세계로 바뀔 것이다.  대립과 갈등,

고통으로 얼룩진 세계를 바꿔나가는 원동력은 세계의 구성원인 나 자신이다.    즉, 세계를 바꾸는 것은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주인공인 자기 자신의 지혜와 그 지혜로 말미암는 걸림없는 행위이다.

 

 

4)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종교

 

불교는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종교이다.  그래서 불교는 믿음과 더불어 스스로 노력하는 수행을 강조하며,

그런 수행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부처님을 믿고, 나아가 나 자신이 본래 부처라는 사실과 진리를 믿어 자신을 비추어 보며,

이웃 중생의 아픔을 덜어주고 함께 사는 아름다움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불교이다.  절대자에게 무조건 빌어

용서를 받고 그에게 귀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불성을 깨워 내 자신의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

곧 믿음과 수행을 겸비하는 불교의 참모습이다.

수행이란 혹독한 시련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고행과는 다르다.  진리를 깨치기 위해 탐욕에 찌든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좋은 습성으로 바꾸어 마침내 깨닫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수행체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사상체계를 이루면서, 다시 수많은 조사스님들과 수행자들이 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이처럼 수행을 중시하는 불교의 특징은,  절대자로부터의 구원만을 중시하고 유일신을 강조하는 다른 종교와 

차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불교도 부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통한 구제의 길도 열어놓지만,  

결국에는 내면의 힘을 키워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의 길로 향한다.  나를  철저히 버리고 그것이 부처님 마음으로

변하는 내면의 변화는 믿음과 수행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점을 강조한 것이 불교이다.

 

5) 지혜의 길

부처님 가르침을 지혜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지혜없이는 깨달음도 없다.  그러면 지혜는 지능지수가 높은 것을 말하는가?

아니다.  지혜는 지능이나 지식과는 다른 개념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먼저, 생각을 바르게 해야 한다.   바른 생각에서 지혜가 나오기 때문이다.

즉,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과 전체를 통찰할 때 지혜가 열린다.  부처님은 지혜의 길을 어떻게

설명하셨을까?

 

첫째, 무명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비록 원수 사이일지라도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거나 원망과 욕심을 버리면 함께 차 한 잔 나눌수 잇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대립과 갈등의 원인은 자신의 욕망 때문이다.  

화가 났을때,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해 보면 화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지만,  자신에게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상대가 자기가 바라는 만큼 해주지 않았거나 자기에게 불이익을 주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그또한 자기 욕심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보면 당시의 화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이것이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무명이다.   이 무명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밝은 지혜의 

눈은 뜰수 있다.

 

둘째.  자신의 무지가 모든 불행과 비극의 시초임을 알았다면, 그 다음은 남을 나처럼 생각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뒤에 오는 결과를 생각하지 안고 행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에 앞서  그 결과를 생각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에 앞서서  행동부터 한다.   잘못된 행동때문에

고통과 아픔이 생긴다.    따라서 눈앞의 이익에 연연한 행동과 욕망에서 벗어나면 지금까지 보지 못 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불교는 바로 이러한 세계를 열어 보여주며,  그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가르침이다.

 

6) 참나를 찾아서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겐

생사의 밤길은 길고도 멀어라     -  법구경 -

 

우리 삶은 올바른 진리의 길에 들어설 줄 모르고 감정과 욕망에 이끌려,  마치 뱀의 꼬리가 앞장서서 길을 가려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가시덩굴에도 들어가고 불속에도 뛰어들고 결국에는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격이다.

이를 두고 원효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중생이 불타는 집에서 윤회하는 것은 끝없는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라고 하였다.

 

참나,    본래의 청정한 나를 찾으려면 먼저 탐욕을 버려야 한다.   참나는 곧  진리요, 깨달음이다.

그래서 참나를 찾아가는 길은 곧 깨달음을 향한 길이다.  참나를 찾지 못한 사람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요, 그런사람에게 생사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부처님께서는  늘 당신을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라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괴로움에서 벗어난 지혜와 평화의 길을 가르쳐주셨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달음과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몸소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우리에게 달린것이다.

 

-- 만은 사람이 부처님 법 안에서 도를 이루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아직도 고해에서 헤매고 있는가

그대는 시작 없는 옛적부터  이 생에 이르도록 깨달음을 등지고

속지에 묻혀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 있구나.

항상 악업을 지어 삼악도에 떨어지고 착한 일을 하지 않으니,

생사의 바다에 빠진 것이 아닌가.

 

== 초발심지경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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