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각과 판단 정지를 위한 탄트라 방편 **
재채기가 나오려는 순간, 공포 속에서, 근심 속에서,
깊은 함정 위에서, 전장의 황급함 속에서, 강렬한 호기심 속에서,
그리고 배고픔의 시작과 끝에서,
중단하지 말고 계속 깨어 있어라.
다른 가르침에서 말하는 순수성이란
우리에게는 불순한 것이다.
실제로 어떤 것도 순수하거나 불순하다고
나눌 수 없음을 알라.
** 변화를 통해 변함없음을 발견한다. **
동일하지 않은 동일함이 되라.
친구에게도, 낯선 사람에게도
명예화 불명예 속에서도 그렇게 되라.
여기에 변화의 구가 있어 변화하고 변화한다.
변화를 통해 변화를 소멸시켜라.
** 욕망으로부터 자유에 이르는 길 **
암탉이 병아리들을 기르듯이 실체 속에서 특별한 앎들과
특별한 행동들을 길러라.
진실로 말하자면 속박과 자유는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이 말들은 오직 우주를 두려워하는 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이 우주는 마음들의 반영이다.
그대가 하나의 태양으로부터 물 속에 비친
수많은 태양들을 보듯이 얽매임과 해탈을 그렇게 보라.
** 빛과 함께 하는 탄트라 명상 **
그대의 정수가 빛줄기가
되어 중심에서 척추를 타고 올라간다고 상상하라.
그러면 그대 속에서 '살아있음' 이 일어나리라.
혹은 이것을 두 중심 사이의 공간에서
번갯불이 치는 것처럼 느껴라.
투명하게 살아 있는 현존으로서 우주를 느껴라.
** 현존에 관한 방편들 **
여름날 그대가 티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볼 때,
끝없이 깨끗한,
그 투명함 속으로 들어가라.
샥티여!
이미 그대 자신의 머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듯이
모든 공간을 바라보라.
그 찬란함 속으로.
잠을 깨는 것, 잠을 자는 것, 꿈을 꾸는 것,
이 속에서 그대는 자신을 빛으로 알라.
** 존재계로 되돌아오라 **
비오는 캄캄한 밤에,
형상 중의 형상이 되어 저 암흑 속으로 들어가라.
달도 없이 캄캄한 흐린 밤이 없다면 눈을 감아라.
그리고 그대 앞에 있는 암흑을 발견하라.
눈을 떠라. 암흑을 보라.
그리하면 실수들은 영원히 사라지리라.
그대의 주시력이 빛날 때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체험하라.
** 에고를 조복받는 방편들 **
발끝에서부터 그대의 형체를 통해 올라오는 불꽃에 초점을 맞춰라.
그대의 몸이 타서 재가 될 때까지,
그러나 그대는 타지 않는다.
불에 타서 잿더미로 변한 가상의 세계에 대해서 명상하라.
그러면 그대는 인간을 넘어선 존재가 되리라.
주관적으로는, 글자들이 단어들 속으로 흘러들고
단어들은 문장 속으로 흘러든다.
객관적으로는, 굴레들이 세상 속으로 흘러들고
세상들은 법칙들 속으로 흘러든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 속에서 이것들의 집약을 발견하라.
** 허공의 발견 **
느껴라.
나의 생각, 나의 존재, 그리고 내면의 기관들을,
그때 진아가 드러난다.
욕망이 있기 전에, 앎이 있기 전에,
나는 존재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주시하라!!
그 아름다움 속에서 녹아 들어라.
** 자유를 찾아서 **
육체를 향한 집착을 내던져라.
그때 나는 모든 곳에 편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곳에 편재하는 사람은 기뻐한다.
아무것도 없음을 생각하면,
제한된 자아는 무한해질 것이다.
**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
인식을 초월하고, 이해도 초월하며,
존재하지 않음도 초월한 어떤 것을
그대가 깊이 응시하고 있다고 가상하라.
거기에 그대가!!!
나는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 사랑하는 자여,
그러함 속에서 무한성을 알아라.
인간은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다. 동물과 신성의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동물은 그의 과거이며 신성은 그의 미래다. 여기에 어려움이 생겨난다. 과거는 지나간다.
그것은 더 이상 없다. 단지 그 그림자만 남아 있다. 그리고 미래는 여전히 미래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꿈이다.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과거의 그림자와
미래의 꿈, 이 둘 사이에 인간이 존재한다. 인간은 그 둘 모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인간은 과거에 동물이었다. 그리고 미래에 그는 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둘 다이다.
그러나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둘 다 아닌 것이다.
인간은 이 둘 사이에 하나의 긴장으로 존재한다. 이 둘이 갈등을 일으킨다. 깨닫기 위해,
뭔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동물에서 신성으로 이르는 한 단계일 뿐이다.
단계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허공 중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무엇을 하든지 인간은 거기에 만족할 수 없다. 두 가지 대칭되는 존재가
그 속에서 만난다. 만약 동물이 만족스러우면 그때는 신성이 불만족스럽고,
신성이 만족스러우면 그때는 동물이 불만족스럽다. 한쪽은 언제나 불만 속에 있다.
탄트라는 종교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종교는 신성을 위하고 동물성을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탄트라는 투쟁의 방편이 아니다. 그것은 초월의 방편이다.
그것은 동물성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신성을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이중성에 반대하는 것이다. 단지 그대 속에 제3의 힘을 만들어 내려는 것일 뿐이다.
탄트라에서는 그 제3의 지점이 아드바이타인 것이다. 곧 불이원의 지점이다.
탄트라는 그대가 이중성을 통한 싸움으로는 하나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투쟁을 통해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불이원의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양자택일은 그대를 하나되게 해주지 못한다. 오직 선택 없는 주시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탄트라에서 근본 원리가 된다. 이 때문에 탄트라는 항상 바르게 이해되지 못했다.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은 곡해되어 왔다. 탄트라가 동물성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
그대에게는 마치 그 말이 동물성에 찬성하라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탄트라가 신성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 그대에게는 그것이 마치 신성에 반대하라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실제로 탄트라는 선택하지 않는 지켜봄이다. 동물성 쪽으로 몰리지도 말고 신성 쪽으로 치우치지도 마라.
갈등을 일으키지 마라. 단지 뒤로 물러나라. 멀리 떨어져라. 그대와 그 이중성 사이에 간격을 두라
그리하여 그대는 제3의 힘이 되라. 주시력이 되라. 동물성과 신성을 동시에 바라보는 지점에 서라.
동물성은 과거며 신성은 미래라고 나는 그대에게 말했다. 과거와 미래는 정반대의 위치다.
탄트라는 현재 속에 있다. 그것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단지 이 순간이 되라.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찾아다니지도 마라. 미래를 열망하지 말고, 과거에 의해 제한받지 마라.
과거는 이미 흘러간 것이기에 폐기 처분하라. 그것을 미래에 투사시키지 마라. 바로 이 순간의
진실에 남아 있어라. 지금 그리고 여기에 말이다. 그때 그대는 초월한다.
그때 그대는 동물도 아니고 신성도 아니다.
탄트라에서는 그러함, 여여함을 궁극으로 여긴다. 과거에 관계치 않고 미래도 지어내지 않을 때,
그냥 그러함 속에 있을 때 거기에 자유가 있다. 비로소 그대는 자유롭다.
이 방편들은 그런 의미에서 종교라고 할 수 없다. 종교는 언제나 동물성에 대해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는 갈등을 일으킨다. 그대가 진짜로 종교적으로 된다면 그대는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모든 종교적 문화는 정신분열증적 문화다.
내면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그대를 둘로 쪼갠다. 그리고 한 부분을 그대의 적으로 만든다.
그때 그대의 에너지 전체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소진된다.
탄트라는 이런 의미에서 종교적이지 않다. 탄트라는 어떤 갈등도, 어떤 폭력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탄트라는 그대 자신과 싸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깨어 있어라. 자신에게 폭력적이 되지마라.
그저 주시자가 되라. 주시하는 순간 그대는 두 얼굴 모두 초월하게 된다.
주시하는 순간 그대는 인간이 아니다. 그대는 그저 존재한다. 어떤 제목 없이 존재한다.
어떤 영역에 속하지 않고 존재한다. 그대는 순수한 존재 자체다. 이 방편들은 바로 그 상태를
위한 것이다.
** 그대의 집은 불타고 있다 **
갖가지 사물은 앎을 통해 인식된다.
자아는 앎을 통해 허공에 빛을 발한다.
아는 자와 앎의 대상을 하나의 존재로서 인식하라.
사랑하는 자여,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앎이, 호흡이, 형상이
담겨지게 하라.
**약도 없는 길 **
하나의 깃털처럼 가볍게 눈동자를 만져라.
가슴이 열리며 두 눈 사이에 일어나는 가벼움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 우주가 스며든다.
어여쁜 데비여,
정기체의 현존 속으로 들어가라.
그대의 형상을 위와 아래로 드넓게 펼쳐라.
** 삶은 하나의 신비다 **
그토록 표현될 수 없는 절묘함 속에 마음의 뿌리를 두라.
위로나, 아래로나, 가슴속에서나,
그대의 형상이 현존하는 어떤 영역이라도
그것을 무한한 허공으로 생각하라.
** 마음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다 **
그대 몸의 조직이, 뼈와 살과 피가
우주의 정기에 흠뻑 적셔져 있음을 느껴라.
창조의 순수한 자질들이
그대의 유방에 스며들고 있음을 느껴라.
그리고 섬세한 형체들을 상상하라.
** 그대 자신은 그대에게 낯설다 **
끝없이 넓은 공간에 거주하라.
나무도, 산도, 집도 없는 곳에서 말이다.
그때 마음의 압박은 끝이 난다.
생각하라.
그 공간이 축복으로 가득 찬
그대 자신의 몸이라고.
** 위험 속에서 살아라 **
어떤 자세 속에서도,
그대의 두 겨드랑이 사이의 영역이
점차 거대한 평화 속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느껴라.
그대 자신이 모든 방향으로
펴져 나가고 있음을 느껴라.
멀리 그리고 가까이.
** 변형의 공포 **
대상과 주체의 세계는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서처럼
깨달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한 가지 위대함을 갖고 있다.
그는 언제나 주인의 기분으로 남아 있다.
사물들 속에서 자기를 잃지 않고서.
전지하다고 믿으라.
전능하다고 믿으라.
그리고 편재한다고 믿으라.
** 붓다의 오르가즘 **
영혼이 그대의 내면과 그대 주위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상상하라.
전 우주가 영적화 될 때까지.
바로 그 욕망의 상태 속에서, 앎의 상태 속에서
그대의 전체적인 의식으로 그 상황을 인식하라.
오, 샥티여,
각각의 특별한 지각력은 한계가 있다.
차라리 전능한 잠재력 속으로 녹아 들어라.
진리 속에서는 각각의 형상들을 서로 분리시킬 수 없다.
분리할 수 없음은 곧 전능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이며
그대 자신의 형상이다.
각각의 형상들이 이러한 의식으로 만들어졌음을 깨달아라.
** 존재가 되라 **
타인의 의식을 그대 자신의 의식으로 느껴라.
그래서 자아라는 국한된 관점에서 벗어나
하나의 존재가 되라.
이 의식은 각각의 존재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라.
이 의식은 각각의 사람들을 인도하는 영이다.
이 영과 하나가 되라.
** 텅 빔의 철학 **
그대의 수동적인 형상이
살의 벽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빈 방이 되었다고 상상하라.
텅 빔이 일어난다.
은혜로운 이여,
유희하라.
우주는 텅 빈 껍질,
거기에서 그대의 마음이 끝없이 장난치고 있다.
사랑스런 그대여,
앎과 알지 못함에 대해서,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에 대해서 명상하라.
그때 그대가 처한 양쪽 모두를 떠날 수 있다.
허공 속으로 들어가라.
의지할 곳 없고, 영원하며, 고요한 허공 속으로.
공, 즉 텅 빔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가장 섬세하고 미묘한 방편들이다.
공이란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붓다는 영혼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만약 어떤 영혼이나 아트마같은 것이 있다면 그대는
그 속에 자신의 에고를 감출 수 있다. 그대가 그대 속에 어떤 자기가 있다고 느낀다면
그때는 에고를 떨쳐 버리기란 무척 힘들다. 그때 그대는 전적으로 텅 빈 상태가 될수 없다.
그대의 자아가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깨어나라! 주시하라! 이해하라!
******* 오쇼에 대하여 *******
오쇼의 가르침은 어떠한 틀로도 규정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강의는 삶의 의미를 묻는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시급한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한다.
오쇼의 책은 그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청중들에게 들려준 즉흥적인
강의들을 오디오와 비디오로 기록하여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강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그 말은 지금 이 시대의
당신들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 세대를 위한 말이기도 하다'
오쇼는 자신의 일에 대해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도록 기반을 닦는 것이라고 했으며,
이 새로운 인간을 '조르바 붓다' 로 부르곤 했다.
조르바 붓다란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소설 속 주인공인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세속의
즐거움을 누리는 동시에, 붓다의 같은 내면의 평화를 겸비한 존재를 일컫는다.
오쇼의 가르침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신은, 과거로부터 계승되어온 시대를 초월한 지혜와
오늘날의 과학문명이 지닌 궁극적인 가능성을 한데 아울러 통합하는 것이다.
또한 오쇼는 점점 가속화되는 현대인들의 생활환경에 맞는 명상법을 도입하여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데 혁명적이 공헌을 하였다. 그의 독창적인 '역동 명상법'들은
심신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줌으로써 일상생활 속에서 더 수월하게 평화와 고요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혁명적인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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