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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마음의 양식 / 노자 - 심층 도덕경

by 심신건강 202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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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춘추 시대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이이며, 자는 담으로, 주나라의 수장실: 왕성 도서관 관리를 지냈다.

공자가 주나라에 갔을 때, 노자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그러자 노자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인용한 말과 의견은 대부분 옛사람의 것이오.  옛사람은 이미 죽어 뼈마저 흙이 

되었고, 다만 몇 마디 말만 귓가에 맴돌고 있을 뿐이오.   군자란 때를 만나면 뜻을 이루지만,

때를 못 만나면 고난의 길을 가야 하오. 내가 알기로 훌륭한 학식과 재능은 깊이 감추어

텅 빈 것과 같소. 군자의 덕망이라는 것도 어리석은 것처럼 보여야 하오. 당신의 교만과

욕심과 자부는 헛된 것이니, 모두 버리시오.  당신 스스로에게도 무익한 것일 뿐이오.

나는 다만 이 말만 하겠소."

공자가 돌아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새가 날고 고기가 헤엄치며 짐승이 걸어 다닌다는 것을 안다. 

 걸어 다니는 것은 가두어 잡을 수 있고, 물 속에서 헤엄치는 것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날아다니는 것은 활로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바람을 타고 구름 위를 노니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내가 만난 노자는 바로 그 용과 같은 인물이다!"

노자는 도덕경 을 저술하면서 자신의 학식을 감추었다.   

그는 오랫동안 주나라에서 살다가

주나라가 쇠락한 것을 보고,  그 곳을 떠나 국경으로 향했다. 

국경의 책임자 윤희가 그를 맞이했다.

"당시께서 은거하고자 하신다면,  나를 위해  책을 저술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노자는 상'하편 5천여 자가 되는 책을 쓰더니 종적도 없이 떠나갔다.

 

공자가 죽은지 129년이 지난 후,  사마천은 '사기' 에 이렇게 적었다.

진과 주는 합쳐진 지 5백 년이 지나 서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다시 70년이 지나자 괘자가 나타났다.

담이 노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진위를 알 길이 없다.   

노자가 은둔한 군자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노자의 아들 종은 위나라의 장군이 되어 단간 지방을 책봉받았다. 

종의 아들은 주이고, 주의 아들은 궁이며,  궁의 현소은 가였다.   

가는 한나라 효문제때 벼슬을 하였고,  가의 아들이 해가

교서왕 아의 태부 벼슬을 했기 때문에, 집을 제나라로 옮기게 되었다.

 

세상에서 노자으 학문을 배우려는 사람은 유학을 멀리하고, 

유학도 역시 노자를 멀리하고 있다.

그러나 뜻이 다르고 서로 함께할 수 없다고 해서 상대를 사단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노자는 스스로 처신하며 욕심 없이 조용하게 살았다.

 

 

 

 

 

1. 상편  ---   도

 

도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천지의 시작이요,  유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무로 그 오묘함을, 유로 그것의 끝을 보고자 한다.   

이 두 가지는 함께 나왔지만

이름이 다르고,  모두 현묘하다고 불린다. 

 현묘하고 현묘하닌 모든 현묘의 문이다.

 

도는 노자 철학 사상의 중심 관념이다.   '

노자'에서 그것은 몇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세계를 구성하는 실체

2) 우주를 창조하는 동력

3) 만물을 운동시키는 법칙

4) 인류 행위의 준칙

이 장에서 말하는 도는 모든 존재의 근원을 가리킨다. 

즉 자연계에서 최초의 발동자이다.

거기에는 무한한 잠재력과 창조력이 있다.   

천지의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은 모두 

도의 잠재력이 쉴새없이 창조와 발육을 하는 일종의 표현이다.

 

천하가 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줄 알지만 추악한 것이며, 

다 선한 것을 선한 줄 알지만 선하지 않다. 

때문에 유와 무가 서로 낳고, 어렵고 쉬운 것이 서로 이루고,  길고 잛은 것이

서로 나타나고,  높고 낮은 것이 서로 기울어지고, 음과 소리가 서로 조화하고, 

앞뒤가 서로 따른다.  이로써 성인은 무위의 일을 함에 있어 무인의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이 작용해도 말하지 않고, 생겨도 소유하지 않고,   만들어도 뽐내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머물지 않는다.  머물지 않기 때문에 떠나지도 않는다.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으면 백성이 다투지 않고,  귀한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하고자 하는 것을 보이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이로써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우며,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강하게 하여,  항상 백성들로 하여금 앎도 욕심도 없게 하며,

지혜로운자로 하여금 감히 하지 못하게 한다. 

 

즉, 무위란 못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명예와 지위는 다툼을 불러일으키고,  재물은 탐욕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간사한 수단과 속임수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첫째, 백성들로 하여금 적절한 안정과 배를 채워 주어야 한다.

둘째는 탐욕에 젖은 마음을 정화시키고 다투려는 마음을 덜어 내도록 해야 한다.

소위 무지라는 것은 우민정잭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속임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무욕이라는 것도 자연 발생적인 본능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탐욕이 날로 커가는 것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도는 비어 있지만 써도 차지않고,  그 깊이가 만물의 종과 같다.

그 깊이가 영원히 존재할 것 같다.  난 도가 누구의 아들인지 모르지만 하느님보다 먼저 같다.

 

천지는 어짊이 없어 만물을 추구로 여기고,  성인도 역시 백성을 추구로 여긴다.

천지간이 마치 풀무와 같다.  비어 있어도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 나온다.

말을 많이 하면 자주 막히니, 속을 비워 지킴만 못하다.

 

천지는 영원하다.   그것은 스스로의 뜻으로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이 몸을 뒤에 두어도 앞에 나서게 되고, 

몸을 버려도 살아 남는 것은 사심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능히 나를 이룬다.

 

상선은 물과 같다.   물은 선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며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꺼려하는 곳에 머물기 때문에 도에 가깝다.   

거함에는 땅이 좋고,  마음은 깊은 것이 좋고,

사귐에는 어진 것이 좋고, 말에는 신의가 있는 것이 좋고, 

정치는 다스려지는 것이 좋고, 

일은 잘하는 것이 좋고,  움직임은 때에 맞아야 좋다. 

물은 오직 다투지 않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 이 장은 물의 성질을 훌륭한 도덕을 갖춘 사람의 인격에 비유했다.   

물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부드럽고, 낮은 곳을 향하며, 만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며 다툼이 없다.는 것이다.

 

노자는 가장 훌륭한 인격도 이와 같은 심성과 행위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꺼리는 곳에 처한다" 라는 뜻은, 남들이 가기 꺼리는 곳을 자진해서 가고, 

남이 싫어하는 일을 스스로 행한다는 것이다. 

즉 낙타와 같은 정신으로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갖은 모욕을 참는

성품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기의 능력이 닿는 데까지 남을

위해 일하면서 절대 공과 명예와 이득을 다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노자의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툼이 없다는 사상인 것이다.

 

넘치도록 갖고 있는 것은 이를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 

날카롭게 간 칼은 오래 보존할 수 없다.

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하면 능히 지킬 수 없다. 

부귀하여 교만하면 스스로 그 재앙을 남긴다.

공이 이루어져 몸이 물러남은 하늘의 도이다.

 

이 장은 영을 노하고 있다. 

영이란 넘칠 정도로 가득하여 지나치다는 뜻이다.

자만하고 교만한 것은 모두 영의 표현이다. 

영만 내세우다가는 송두리째 뒤집어지는  재앙을 면하기 힘들다. 

그래서 노자는 사람들에게 절대 넘치는 영에 이르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한 사람이 성공을 거두어 명예를 얻고 적당한 때에 물러설 줄

알아야만이 오래도록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물러난다는 것은 몸이 완전히 물러난다는 것이 아니고,

 

행적을 감추는 은거는 더욱 아니다.  왕진은 이렇게 말했다.

 

'물러선다는 것이 반드시 성공을 거둔 뒤에 물러나는 것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공을 하고 물러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물러나는 것은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공을 거둔뒤에는

미련을 갖지 말고 드러내지도 말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물러난다는 것은 숨어 사는 은사가

되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를 너무 내세우지 말라는 뜻이다.  

 

혼백을 하나로 하여 떠날 수 있겠는가? 

기를 모으고 부드러움을 다해 능히 어린아이와 같을 수 있는가? 

욕심의 때를 깨끗이 씻어 내어 티끌이 없게 할 수 있는가?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무위로 할 수 있는가? 

천문이 열리고 닫힘에 능히 고요히 할 수 있는가? 

명백하게 알아 막힘이 없지만 , 모르는 듯하게 할 수 있는가?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 바퀴통을 만드니, 그 비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수레를 쓸 수 있다.

찰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니, 그 비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담을 수 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니,  그 비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방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있는 것이 이로운 것은 없는 것이 쓰여지기 때문이다.

 

노자는 세 가지 예를 들고 있다.  수레의 작용은 짐과 사람을 태우는 데 있고, 

그릇은 무엇을 담는 데 있으며,  방은 공간을 이용하여 사는 데 있다. 

이 모두는 사람에게 주는 편리이다.

그러므로 있음으로써 이득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수레바퀴에 빈 공간이 없다면 굴러가지 못한다.

그릇에 빈 공간이 없다면 무엇을 담을 수 없다. 

또 방과 창문에 공간이 없다면 빛이 들어올 수 없고, 살 수가 없다. 

이로써 빈 공간의 작용과 쓸모를 알게된다.

그래서 무가 곧 쓸모 있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은 사람의 귀를 멀게 한다. 

 오미는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한다.

말을 타고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발광하게 만들고,

얻기 어려운 재물은 사람의 행실을 그르치게 한다.

이로써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총애와 치욕은 모두 놀람같이 하고,  큰 재앙을 몸같이 여긴다. 

총욕을 놀람같이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사랑받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고 굴욕을 최하로 여겨, 얻어도 잃어도 놀란 것처럼

하는 것을 말한다. 

 큰 재앙을 몸같이 여긴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인가  내가 큰 재앙을 당했다고

여기는 것은 내 몸이 있기 때문이며,  내 몸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걱정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몸을 귀히 여겨 천하를 다스리면 곧 천하를 맡길 수 있고, 

몸을 사랑하여 천하를 다스리면 곧 천하를 맡길 수 있다.

 

마음을 비워 지극한 허를 이루고 안정을 잘 지키면,

만물이 일어나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만물은 무성했다가다시 그 뿌리로 돌아가니,  그것을 정이라 하고 천명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천명으로 돌아가는 것을 영원함이라 하고,  영

원함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

영원함을  알지 못하면  망령되게 행동하여 재앙을 당하게 된다. 

영원함을 알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면 곧 공평하다.

공평하면 왕이 될 수 있고,  왕이 되면 하늘이 되며, 

하늘이면 곧 도요, 도는 영원하다.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위태하지 않다.

 

가장 훌륭한 군왕은 백성들이 그의 존재를 느끼지 않는 것이고, 

다음은 덕으로 백성을 감화시켜 명예를 얻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강권으로 다스려 두렵게 하는 것이고, 

네번째는 권모술수로 백성을 우롱하고 속이는 것이다.   

군왕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백성들이 믿지 않게 된다.

말을 귀중하게 여기며 공을 이루고 물러나면,

백성들은 입을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비정한 권력 속에 처신하고 냉혹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

노자는 "제왕의 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하며

유유자적했던 시대를 부러워했다.   권력의 횡포가 없고,

백성이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을 즐겨했다. 

 

노자의 이상적이 정치는 이러하다.

1) 통치자는 성실하고 진지한 소양을 지녀야 하고

2) 정부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조직일 뿐이며,

3) 정치 권력이 백성에게 조금도 위압적인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대도가 없어지면 인의가 생기고,  지혜가 나타나면 큰 거짓이 생긴다. 

 육친이 화목하지 못하면

효도와 사랑이 강조되고, 국가가 혼란하면 충신이 생겨난다.

 

고기는 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사람은 공기의 중요성을 모른다.  대도가 번성하여 인의가 

그 가운데 스며들어 있을 때는 그런 것을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인의를 외쳐 대는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사회가 각박해졌다.   

덕행을 표창하는 것도  사회의 결함이 많기 때문이다.

선행을 표창하는 것도 그런 일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예와 응의 차이는 얼마이며, 선악의 차이는 또 얼마인가?

사람의 두려워하는 바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으니,  거칠고 무성하여 그것을 다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며 잔칫상을 받는 것 같고, 봄철에 소풍을 머뭇머뭇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 같다.  모두들 여유가 있는데, 나만 모자라는 것 같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 같도다. 

속세의 사람들은 밝은데, 나 홀로 어둠 같고, 속세 사람들은 

총명한데,  나 홀로 답답한 듯이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데, 

나 홀로 완고하여 천박한 것 같다.   

나 홀로 보통 사람과 달라 어머니에게 길러지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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