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나무는 수명을 다 누리고, 자벌레는 몸을 굽혔다가 편다.
물은 땅이 파인 곳에 차고, 옷은 헤져야 새것을 입는다.
욕심이 적으면 만족을 얻고, 아는 것이 많으면 어지럽다.
이로써 성인은 한결같이 도를 지녀 천하의 모범이 된다.
스스로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밝고,
스스로 옳다고 우기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며,
스스로 뽐내지 않기 때문에 공이 있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간다.
오직 다투지 않기 때문에 천하가 능히 더불어 다툼이 없다.
옛말에, 소위 굽은즉 온전하다는 것이 어찌 실없는 말이리요!
진실로 온전하게 하여 도에 되돌려야 한다.
평범한 사람은 언제나 사물의 겉모양 쫓기를 좋아하고,
온전함과 넘치기를 바란다.
또 자신을 드러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많은 다툼이 생긴다.
온전함을 구하는 도는 다투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비결이다. 다투지 않는 도를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며,
스스로를 옳다거나 최고라고여기지 않는 데 있다.
이 장의 처음에 말했던 곡, 왕, 와, 폐 등은 모두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무릇 병기를 좋아하는 자는 상서롭지 못하며,
사람들도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도가 있는 자는 거기에 처하지 않는다.
군자가 거처함에 있어서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다가, 병기를 사용할 때면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병기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군자의 물건이 아니다.
부득이 그것을 사용하게 되면 담담한 심정으로 대처하고, 이겨도 자랑하지 않는다.
만약 자랑을 하면,
이는 살인을 즐기는 것이 된다. 살인을 즐기면 천하의 뜻을 얻을 수 없다.
좋은 일에는 왼쪽을 숭상하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숭상한다.
부장군은 왼쪽에 거하고, 상장군은 오른쪽에 거한다.
이것은 전쟁을 상례로 여기고 대처함을 뜻한다.
살인을 많이 하면 슬픔을 다해 애도하며,
싸워 이겨도 상례로써 처리한다.
노자는 무력이야말로 재앙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하여,
전쟁의 해로움을 지적하면서 전쟁에반대하는 사상을 피력했다.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부득이할 경우,
즉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포학한 무리와 맞설 때 역시
차분하고 담담함을 지켜 승리를 거두어도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자랑하게 되면 살인을 즐기는 것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 말을 무력을 숭상하는 자들의
심리 상태와 행위의 핵심을 한마디로 지적한 것이다.
부득이 싸움에 임해야 할 때는 반드시 상례로
대하고 눈물로 슬펴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인도주의의 외침이 아닐 수 없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기를 아는 자는 밝다.
사람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고, 자기를 이기는
자는 강하다. 만족함을 아는 자는 넉넉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다.
그것을 잃지 않는 자는 오래 지속되고,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것을 장수라고 한다.
이 장에서는 개인의 수양과 자아의 확립을 논하고 있다.
스스로를 알고 자신을 이기며,
스스로 만족하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스스로를 굳세게 하며
사상과 생명을 전개시킬 수가 있다.
대도를 잡아 천하에 나가면 해롭지않고 편안하며 평화롭다.
음악과 음식에는 지나치는 나그네도
멈춘다. 도에 관한 말은 담담하여 그 맛이 없다.
보아도 족히 보지 못하고, 들어도 족히
듣지 못하고, 써도 다 쓰지 못한다.
장차 거두고자 하면 반드시 그것을 잠시 벌여 놓고,
약하게 하려면 먼저 강하게 하고,
망하게 하려면 먼저 흉하게 하고, 빼앗으려 하면 먼저 준다.
이것을 일러 미명이라고 한다.
유약한 것은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는 못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의 이로운
그릇은 가히 남에게 보일 수 없다.
*** 하편 ---- 덕 ***
상덕은 덕이라 하지 않기 때문에 덕이 있다.
하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덕이 없다.
상덕은 행함에 있어 인위적이지 않고, 하덕은 행함에 있어 인위적이다.
상인은 행함에 있어
인위적이지 않고, 상의는 행함에 있어 인위적이며,
상례는 행함에 있어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곧 팔을 걷어붙이고 덤빈다.
그런고로 도를 잃은 뒤에 덕이 있고, 덕을 잃은 뒤에 인이 있고,
인을 잃은 뒤에 의가 있고, 의를 잃은 뒤에 예가 있다.
예를 강조하는 것은 충신이 없어져 어지러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며, 먼저 깨달았다는 것은 도의 아름다운이긴 하지만,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이로써 대장부는 그 후한 곳에 처하고 박한 곳에 처하지 않으며,
그 실한 데 거하고 아름다움에 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와 지를 버리고 도와 충신을 취한다.
반은 도의 움직임이요, 약은 도의 쓰임이다.
천하 만물은 유에서 나고, 유는 무에서 난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세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안으며, 두 기는 마주 보며 조화를 이룬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릴 수 있다.
무형의 힘은 틈이 없는 물체를 뚫고 들어간다.
바로 이것으로써 무위의 유익함을 안다.
무언의 가르침과 무위의 장점은 천하에서 매우 드문 존재이다.
남이 가르치는 것은 나도 가르칠 수 있기에 내가 곧 스승이 된다.
명예와 생명은 어느 것이 더 친하며, 목숨과 재물은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
얻음과 잃음은 어느 것이 병인가?
그러므로 깊이 사랑하면 반드시 크게 쓰고,
많이 간직하면 반드시 많이 잃는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가히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말이 밭갈이를 하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군마가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는다.
재앙은 족함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허물은 얻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족함을 아는 넉넉함은 항상 풍족하다.
전쟁의 발단은 대부분 침략자의 끝없는 야심과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 때문에 일어난다.
그 결과, 남의 나라를 침입하여 목숨을 해치고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 준다.
노자는 통치자가 탐욕으로 인해 해를 끼치는 것을 경계하며,
위정자는 담담하게 본분을
지키고 침략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천하에 도가 없으면 군마가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는다'
이것 또한 전쟁으로 인하여 살육을 밥 먹듯이 하는 처참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 장과 30장, 31장에는 모두 전쟁을 반대하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으며,
당시의 침략 전쟁을 통렬히 꾸짖고 있다.
문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며, 창문으로 엿보지 않고도 천도를 본다.
그 나감이 멀면 그 아는 것은 더욱 적다.
이로써 성인은 가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밝게 살피며, 하지 않고도 이룬다.
학문을 배우면 날로 더해 가고, 도를 닦으면 날로 줄어든다.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무위에 이르러 모든 것을 하지 않음이 없다.
천하를 취하되 항상 무위로써 취하며, 유위에 미치면 천하를 취하지 못한다.
성인은 선입관이 없이,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는다.
선한 자도 착하다고 하고 선하지 않은 자도
역시 착하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 원래 착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자도 진실하다고 하고
진실하지 못한 자도 진실하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원해 진실하기 때문이다.
성인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두려운 마음으로 백성들의 마음과 생각을 순진하게 만든다.
백성들이 모두 그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있을지라도,
성인은 그들에게 모두 어린아이와 같은 순박함을 회복시켜 준다.
나오면 살고 들어가면 죽는다. 장수하는 사람이 열에 셋이고,
단명하여 요절하는 사람도 열에 셋이다.
또 태어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는 사람도 열에 셋이나 되는데,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자신의 삶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산에 들어가도
코뿔소와 흉악한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전쟁터에서도 칼의 해를 당하지 않는다.
코뿔소를 만나도 그 뿔에 찔리지 않고, 호랑이를 만나도 그 발톱 아래 다치지 않으며,
날카로운 칼날이라도 그를 어쩌지 못한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에게는 죽음이란 것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중 대략 10분의 3가량이 장수하고, 10분의 3가량은 단명이다.
이것들은 모두가 자연적인 죽음에 속한다.
그러나 10분의 3가량은 원래 오래 살 수 있었지만, 좋은 것만 탐하다가 몸을 상하게
함으로써 죽음으로 향하는 경우이다.
소수의 사람만이 자기의 생명을 아낄 줄 알아,
사리사욕을 없애고 순박하고 자연에 모든 것을 맡기는 생활을 한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얽힌 것을 풀고,
그 지혜의 빛을 거두어들이고, 속세에 동화하는 것, 이를 일러 현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히 친함도 멀어짐도 얻을 수 없고, 이로움도 해됨도 얻을 수 없고,
귀함도천함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가장 귀한 것이 된다.
정도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기발한 책략으로 군사를 쓰고, 무사로 천하를 취한다.
내 무엇으로 그런 줄을 아는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천하에 금하는 것이 많으면 백성이 더욱 가난하고, 조정의 권모 술수가 많으면
국가가 더욱 혼란해진다
사람이 기교가 많으면 기이한 물건이 많이 생겨나고,
법령이 다스리면 백성들 스스로 교화하고, 내가 고요한 것을 좋아하면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이 없으면 백성이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이 없으면
백성이 스스로 순박해진다고 하였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도로써 천하에 다다르면, 귀신도 신령하지 않다.
그 귀신이 신령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신령함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신령함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인 역시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무릇 둘이 서로 상하게 하지 못하므로 덕이 모두 이에 돌아간다.
강과 바다가 온 하천의 왕이 되는 것은 그 아래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백성의 위가 되고자 하면 반드시 말을 백성 아래에 두고,
백성의 앞이 되고자 하면 반드시 몸을 백성 뒤에 처한다.
때문에 성인은 위에 처해도 백성이 무겁다 하지 않고, 앞에 처해도
백성이 해롭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가 다 그를 떠받들기를 즐겨 하고 싫어하지
않는다. 그가 다투지 않는 까닭으로 천하에 능히 더불어 다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훌륭한 장수는 함부로 남을 앞지르지 않고, 잘 싸우는 자는 성내지 않고,
적을 잘 이기는 자는 함께 싸우지 않고,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사람들의 아래에 있는다.
이를 일러 다투지않는
덕이라고 하며, 사람을 부리는 함이라고 하며, 하늘의 도를 부합된다고 한다.
이것이 옛날 도의 극치이다.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것은 훌륭한 것이요,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병을 병이라고 하는 것이 병이 아니다. 성인은 병들지 않으니, 그 병을 병이라
여기기에 병들지 않는 것이다.
용맹을 내세우면 죽고, 그렇지 않으면 산다. 이 둘 중 하나는 이롭고, 하나는 해롭다.
하늘이 미워하는 까닭을 그 누가 알리요? 이로써 성인도 어려워하는 것이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아도 잘 이기며, 말하지 않아도 잘 대답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며, 느리게 해도 잘 계획한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기어도 놓치는 일이 없다.
사람은 태어나서는 유약하지만 죽을 때에는 굳고 강하다. 만물과 초목이 살아서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그것이 죽을 때는 마르고 단단해진다. 때문에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유약한것은 삶의 무리이다. 이로써 군사가 강하면 곧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곧 부러진다. 강대한 것은 아래에 처하고 유약한 것은 위에 처한다.
노자는 인류와 초목의 생존 현상에서 살아 있는 것은 유약하고, 죽은 것은 모두 굳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노자는 만물의 활동에서 물리의 영원 불변의 이치를 관찰하고 이렇게 단언했다.
'단단한 것은 죽은 무리이고, 유약한 것은 살아 있는 무리이다'
노자의 결론에는 강한 물체는 이미 생기를 잃은 것이고,
유약한 물건은 생기가 충만해 있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사물의 내적인 발전 상황으로 설명한 것이다.
만약 그것들을 외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강한 물건이 죽음의 무리에 속한다는 것은 그것이
밖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외부의 충격이 가해졌을 때 가장 먼저 부딪치게 되어 상하기
쉽다는 뜻이다. 재능을 드러내 보이면 쉽게 시기를 불러들여 타격을 받게 된다.
이것은 바로 큰 나무가 쉽게 잘리는 것과 같다.
인위적인 재난도 이와 같은데, 자연의 재난은 더욱 그러하다.
태풍이 불면 큰 나무는 부러지지만, 작은 풀포기는 유연하여 바람에 흔들릴 뿐이다
이 장에는 노자가 유한 성질을 소중히 여기고, 단단한 강의 성질을 경계하는 사상이
언급되어 있다.
천하에 물보다 유약한것이 없으나, 강한 것을 공략함에 있어 이를 이길 것이없음은,
물과 바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약한것이 센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을 천하에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으나, 능히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없다.
이로써 성인은 '나라의 어렵고 더러운 것을 맡아 다스리는 것을 군주라고 하고,
나라으 상서롭지 못한 것을 맡아 다스리는 것을 천하의 왕이다'라고 한다.
바른말은 진실과는 반대인 것처럼 들리는 법이다.
큰 원한은 풀어도 반드시 남는 원한이 있다. 어찌 그것을 잘한 일이라고 하겠는가?
이로써 성인은 좌계를 잡아 사람을 꾸짖지 않는다. 덕이 있는 사람은 계를 맡고,
덕이 없는 사람은 철을 맡는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운 친함이 없어 편애함 없이
항상 착한 사람의 편을 들 뿐이다.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않다. 선한 자는 말을 잘 못하고,
말을 잘하는 자는 선하지 않다.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성인은 쌓지 않는다. 남을 위함으로써 내가 더욱 있게 되고, 남에게 줌으로써 내가 더욱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로울 뿐 해치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위할 뿐 다투지 않는다.
이 장의 격언은 인류 행위의 최고 준칙으로 삼을 수 있다.
앞의 세 마디 격언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실하고 소박하고 진심을 다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뒤쪽의 네 구절은 사람들로 하여금 백성에게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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