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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마음이 쉬고 싶을 때 - Zen, 마조 선사 (1)/오쇼

by 심신건강 202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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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는 서기 709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육조혜능 이후, 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일찍이 육조혜능은 남악회양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대의 발 아래에서 말 한 마리가 나와 천하 사람들을

발길질로 차 죽이리라."

중국에서 '마'는 말을 의미한다.

 

마조는 어린 시절부터 절에서 지냈으며,

이십 세가 되기도 전에 이미 출가승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남악회양이 마조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한눈에 마조가

법기임을 알아보았다.

회양은 좌선하고 있는 마조를 찾아가 물었다.

"대덕은 무엇을 얻으려고 좌선을 하는가?"

마조가 대답했다.

"불성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자 회양은 부근에 있던 기왓장 하나를 집어 들더니

마조 앞에서 갈기 시작했다.

마조가 물었다.

"기왓장은 갈아서 무엇에 쓰실 겁니까?"

회양이 대답했다.

"거울로 쓰려고 하네."

이에 마조가 빈정거렸다.

"그런다고 기왓장이 거울이 되겠습니까?"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회양이 일갈했다.

"기왓장이 거울이 될 수 없다면 좌선으로 부처가 되겠는가?"

 

마조가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회양이 말했다.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수레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아니면 소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마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회양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좌불을 흉내내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좌선을 배우고 싶은 것인가? 만일 좌불을 흉내내고 싶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양새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리고 좌선을 배우고 싶다면, 선이란 결코 앉거나 눕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   법은 영원히 계속 이어질 뿐, 

결코 머무는 적이 없다.  좌불을 흉내내는 것은 곧 부처를 죽이는 것이다.

앉음새에 집착하면 정작 깊은 이치에는 이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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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강의

 

마음은 어려운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마음의 모든 야망 뒤에는 

특별해지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  그리고 특별한 존재가 되려면 

특별한 일을 달성해야 한다.

 

선(zen)을 수행할 때 생기는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선은 그대가 아주 평범한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선은 특별한 존재를 원치 않는다.   이것은 마음의 욕망 자체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마음은 항상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은 작은 현상이 아니다.  마음은 모든 사람들이 수많은 생을

통해 쌓아 올린 엄청난 욕망의 집합체이다.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다.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데 왜 평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마음은 무겁다.  마음은 과거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겸손하고 단순하며 자연스러운 붓다를 보는 순간,

마음은 즉시 그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마음을 

이루는 구조 자체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마음은 

아주 가볍다.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그대는 텅 빈 거울이 되어야 한다.

 

스승에게는 이데올로기가 없다.  스승은 선교사가 아니다.

스승은 그대를 세뇌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세뇌에서

벗어나게 한다.   스승은 그대의 모든 이데올로기를 빼앗아 간다.

그대의 마음 자체를 없앤다.  그래서 그대 존재의 순수한 공간이 

성장하도록 돕는다.

 

불성은(buddhahood)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이해하라.

불성은 이미 그대의 본성이다.  만일 그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놓치고 말 것이다.   다만 모든 것을 방임하고 그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뿐이다.    그러면 붓다가 깨달음의 광채를 뿌리며 이미 그곳에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모든 것은 철학이 아니다.  사실, 가르침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그대가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긴장을 풀도록 도울 뿐이다. 

그 기억은 그대의 불성(buddhahood)에 대해 인식하게 만들 것이다.

그 기억은 성취가 아니다.  왜냐하면 붓다는 이미 그대의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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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으로부터 법(dharma)의 의미에 대해 가르침을 듣고 난 후,

마조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감로수를 마신 기분이었다.

 

그는 스승에게 큰절을 올리고 나서 다시 물었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면 무상삼매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회양이 말했다.

"그대가 내면의 지혜로 가는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내가 그 법의 요지를 말해주는 것은

마치 하늘이 내려주는 단비와도 같은 것이다.

그대는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반드시 '도'를 보게 되리라"

 

마조가 다시 물었다.

"도는 색깔과 형상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회양이 말했다.

"심지의 법안은 능히 도를 볼 수 있다.  무상삼매도 마찬가지다."

 

마조가 물었다.

"거기에도 성주괴공이 있습니까?"

이에 대해 회양이 답했다.

"이루고, 파하고, 모으고, 흩어진다는 관점에서 도를 본다면,

진정으로 도를 보는 것이 아니다.

나의 계송을 들어보라."

 

"무심의 땅이 품고 있는 여러 씨앗은

단비 올 때 한결같이 싹터 오르네.

삼매의 꽃은 형태와 색깔이 없으니

피고 짐이 또다시 있을 리 있겠는가?"

 

마조는 이에 문득 개오하고 마음속에 초연함을 느꼈다.

이후 제자로서 십년을 시봉하니, 나날이 그 깨달음이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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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강의 

 

회양은 말한다.

"그대의 내면에 관한 한, 그대의 붓다는 이미 거기에 있다.

그대는 붓다를 만들 필요가 없다.  그대의 내면 세계에는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다 존재한다."

 

**간잔 은 이렇게 옲었다.

 

내 집에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 동굴에는 아무 것도 없네.

순수하고 경이로운 공간

태양처럼 빛나는  광채가 있을 뿐.

이 늙은 몸은 한 끼 죽이 돌볼 것이고

이 유령 같은 몰골은 헤진 넝마가 감쌀 것이네.

내 앞에 천 명의 성인이 와 보라지

내겐 거룩한 진리의 부처가 있으니.

 

**간잔 에겐(1277-1360)  일본 임제종 삼대 거목 중의 일인이다.

운문의 관과 공안을 타파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제자를 데리고

길을 가다가 큰 소나무 밑에 이르러 뒷일을 부탁하곤 

그대로 선 채 입망했다고 전해진다. 

 

 

- 2편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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